top of page
검색

[형이상학에 대한 논리적 접근] 크루크 씨의 펜

  • Hyeongseok Na
  • 2월 21일
  • 4분 분량

크루크 씨의 펜

 

프로타고라스는 전형적인 상대주의 철학자로서 헤겔과 대조를 이룰 수 있다고 간주된다. 헤겔은 절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특히 절대자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유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가 이해하기 가장 쉬운 철학자로 평가된다면, 헤겔은 가장 난해한 철학자로 평가되며, 특히 영어권 철학자들 사이에서 헤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루크 씨(Herr Krug)의 일화는 헤겔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크루크는 헤겔에게 절대자로부터 자신의 펜을 연역해 보라는 도전을 제기했으며, 헤겔은 이에 대해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답하며 응하지 않았다. 이 일화는 헤겔 철학의 본질을 드러내며, 쇼펜하우어가 헤겔 체계를 "존재론적 논증의 괴물 같은 확장"이라고 비판한 맥락을 상기시킨다. 물론 헤겔이 자신의 철학 체계로 “크루크 씨의 펜”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헤겔은 크루크 씨가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고는 단정짓지 않았다.

 

존재론적 논증과 관련하여, 순수 논리만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표준적인 가정이다. 물론 비존재는 다르다. 비존재의 증명은 논리를 통해 F-ness라는 개념이 모순을 포함함을 도출함으로써 F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경험적 전제에 의존하지 않는 경험독립적(a priori) 지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헤겔을 제외하고, 표준적인 가정을 거부하고 순수 논리로 존재를 증명하려 한 철학자는 크게 두 명이다. 첫째는 11세기의 안셀무스로,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론적 논증을 제안했다(11장에서 다룸). 둘째는 19세기의 프레게로, 그는 수의 존재를 논리만으로 증명하려 했다. 프레게는 자신의 논리 체계를 통해 단순히 둥근 사각형이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수가 시공간 밖에서 마음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추상적 엔터티(콰인이 이런 항목을 추상적 엔터티라 명명함)임을 논증했으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반플라톤주의자들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존재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신조차도 구체적 엔터티라고 주장했다.

 

신의 존재는 수, 추상적 엔터티처럼 존재론에서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데이비드 흄은 표준적 관점에 따라, 논리를 통해 그 어떤 존재도 부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흄에게 있어 존재란 우연적이며, 이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과 대조된다. 안셀무스는 ‘적어도 하나의 둥근 사각형이 있다’는 진술이 모순을 품고 있는 것처럼, 신의 개념을 통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모순임을 논리적으로 도출하려 하였다. 따라서 이 진술은 단순히 거짓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필연적인 거짓이다. 신은 단순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흄의 반대 논리를 무릅쓰고 비우연적 엔터티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결론내린다. 그리고 안셀무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가 논리에 의해 진리가 확립될 수 있는 명제로 분석적 명제를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레게는 수의 존재에 대한 논증에서도 유사한 입장을 취하며, "수가 존재한다"는 명제를 논리적 분석에 의해 입증 가능한 분석적 명제로 간주했다.

 

헤겔은 자신의 형이상학을 <논리의 학>이라는 저서에 담았다. 이 책에는 논리학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헤겔은 합리성 자체(칸트의 ‘순수이성’을 떠올려보라)가 논리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이 내용과 형식을 분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형식논리학이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순전히 내적인 비판을 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내용이 쏟아져 들어오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이 헤겔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이라 여겨진다. 헤겔에 따르면, 형식논리학(=형이상학)의 합리적 재구성은 크루크의 펜에 대한 연역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순수한 경험독립적 논리와 경험적 논리가 분리되지 않는 새로운 논리적 틀을 요구한다. 쇼펜하우어는 논리적 추론이 순전히 경험독립적(a priori)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지만, 경험독립적과 경험의존적의 개념 간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결국 헤겔의 시대에는 형식논리학이 쇠퇴했고, 1879년 프레게의 <개념표기법>이 출판되면서 큰 도약을 이루었다.

 

프레게의 <개념표기법>은, 동일성의 원리로부터 크루크의 펜을 연역할 수 있는 기계를 제공한다. 이 연역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는 전제를 통해 "스미스는 스미스와 동일하다"를 도출한다(여기서 "스미스"는 크루크의 펜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설정됨). 둘째, "스미스는 스미스와 동일하다"는 명제로부터 "무언가가 스미스와 동일하다"는 명제를 도출한다. 이는 보편 예화(U.I.)과 존재 일반화(E.G.) 규칙을 통해 이루어진다.

 

(1) (x) x=x

∴ (2) Smith = Smith U.I.

∴ (3) (∃x) (x = Smith) E.G.

 

(1)을 ‘모든 x에 대해 x는 x와 동일하다’로 읽으면, 우리는 보편 예화의 규칙에 호소하여 (2)를 추론하고, (2)에서 "x가 존재하여 x는 스미스와 동일하다"는 (3)을 추론한다. 여기서는 존재 일반화의 규칙을 적용한다.

 

이 논증의 형식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예를 들면, "모든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모스크바도 인간이다"라는 논증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논증의 형식은 "모든 것은 F이다. 따라서 a는 F이다"이며,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참이 된다. 그러나 전제가 경험독립적으로 참임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배중률을 적용하면 "스미스는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니다"가 도출되고, 이는 스미스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보장한다.

 

프레게는 고유명사의 확장된 개념을 통해 크루크의 펜이 단순히 펜일 뿐 아니라 크루크의 펜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이 논증은 결론이 전제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통념과 충돌한다. 이를 "경험독립적 논제"로 부를 수 있으며, 프레게의 논증은 이를 위배한다. 이는 프레게의 수에 대한 경험독립적 논증과 크루크의 펜에 대한 경험의존적 논증의 차이를 드러낸다. 전자는 순수 논리로부터 도출되는 반면, 후자는 경험적 내용을 포함한다. 크루그 씨나 그의 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동일성 원리만으로 크루그 씨의 펜의 존재를 연역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프레게는 논리적 형식과 경험적 내용이 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헤겔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거의 모든 철학자는 프레게의 크루크 씨의 펜에 대한 경험의존적 추론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한 번 다음 논증, 즉 ‘(4), (5), 그러므로 (3)’을 숙고할 기회를 갖는다면 경험독립적 명제를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4) 비가 내리고 있다.

(5)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 논증은 기묘하지만, 그 형태는 단순히 ‘p, ~p ∴q’로 되어 있으며, 이는 적어도 중세 시대 이래로 논리학자들에 의해 타당한 논증 형태로 인정해 왔다. 따라서 (4)로부터 추가 규칙(Rule of Addition), 또는 희석 규칙(Rule of Dilution)이라 불리는 규칙에 따라 ‘(4) ∨ (3)’를 도출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5)와 함께 ‘(4) ∨ (3)’를 고려하면 선언적 삼단논법의 규칙(Rule of Disjunctive Syllogism)에 의해 (3)을 도출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몇몇 철학자들이 비표준적이고 이른바 앨런 로스 앤더슨(Alan Ross Anderson)과 누엘 벨납(Nuel Belnap)의 ‘관련성(relevance) 논리’를 선호하며, 추가 규칙을 정당한 추론 원리로 간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논증을 거부한다면, 이는 그들이 선험적 논제에 대한 충성을 동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크루크 씨나 그의 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단순히 (4)에서 ‘(4) ∨ (3)’을 추론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형이상학에 대한 논리적 접근] 함수

함수   이 페이지들에서 우리는 제1원리(first principles)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해를 확보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헤겔의 원리는 형이상학이...

 
 
 
[형이상학에 대한 논리적 접근] 관계

관계(Relations)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어도 한 번 이상 비실체적 범주들 중 일부가 다른 것들보다 실체에 더 가깝거나, 보다 실체와 유사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질은 양보다 더 실체적이며, 양은 다시 관계보다 더 실체적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논리적 접근] 범주

범주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는 (길버트 라일을 따라) 범주 오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오류로 인해 무효화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프로타고라스는 실체와 관계라는 범주를 부적절하게 혼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Comments


Contact
Information

Department of Philosophy

Sungkyunkwan University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ampus)

Toegye Hall of Humanities, 25-2 Sungkyunkwan-ro, Jongno-gu, Seoul, Korea, 03063

©2025 by Hyeongseok Na. Powered and secured by Wix

bottom of page